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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준욱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정보관리팀장

1996년 졸업, 환경공학

[ 30대의 새로운 선택 - 기술고시와 기술사 합격기 ]

Ⅰ. 들어가며

합격수기를 쓰게 될 줄을 미리 상상하고 그려왔으며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만끽하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 글을 읽어볼 분들에게 미리 저의 오만함과 건방짐에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 글을 시작할까 한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엇인가 선택하면 또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삶은 선택의 수레바퀴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운이 나뿐 것도 재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생각과 태도, 즉 마음의 상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 머피박사의 잠재의식 이론 중에서 -


Ⅱ.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96년 2월에 졸업을 하였지만 졸업 전 95년 말에 이미 취업이 되었다. 운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학교 때의 철저한 취업준비로 여러 회사 중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 직장은 30대 대기업 군에 소속된 회사였으며 공채 신입사원에게 여러 혜택이 제공(교육, 해외연수 등)되는 회사였으므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건설 회사였기 때문에 현장파견 근무도 있었지만 나는 무척 자신감 넘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97년 말에 시작한 IMF의 여파로 회사가 무너지는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 했으며 그 틈바구니에서 아등바등 되는 회사 선배들과 나 자신을 보며 불투명한 미래에 첫 번째로 회사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후회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고 당면한 현실이었다. 그 당시 최초로 기술고시를 생각하고 새로운 선택의 길을 찾으려 하였지만 그것도 주변의 만류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어려운 시기에 괜찮은 회사로 이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나 그것은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왔다. 98년 중순경에 옮긴 회사는 그 어렵다는 IMF시기에도 필요인력을 뽑을 정도로 내실 있는 건설회사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기존에 내가 경험한 환경기술 분야와는 다른 환경관리 업무였기 때문에 이내 그 업무에 대한 실망과 갈증, 또한 회사의 중요 부서로 여겨지지 않는 관계로 구조조종에 대해 걱정해야했다. 분명 만족한 직장을 얻는 것이 당연히 힘들며 지금의 취업현실을 바라본다면 배부른 소리에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것이나 그 당시에는 10년 후의 모습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한 나의 생각이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IMF를 점차 극복해나가는 시기지만 취업에 대한 것만큼은 지속적인 악화일로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재취업은 쉽지 않았으며 경력 또한 2개 분야로 나누어져서 이직의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사회생활의 시작점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맞이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답답함의 나날이었으며 결국 회사생활을 하면서 고시공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99년도 말에 시작하여 2000년에 1차 시험을 치렀으나 역시나 합격선 보다 훨씬 낮은 점수로 낙방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에 전념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불투명하였으므로 더욱 힘든 고민에 휘말리게 되었다.


Ⅲ. 선택의 순간들

1. 고시의 선택
고시를 결심한 시기부터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고민을 했지만 정말 그만두고 고시공부를 할 수 있을지 여부와 과연 합격을 할 수 있을 지의 불안함 또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어렵다는 고시공부를 해낼 수 있을 가에 대한 고민이 몇 달간 지속되었고, 결국 2000년도 말에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며 그 많은 불안함을 가슴에 안고 새롭게 고시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공부라 주위 분들의 걱정도 많았지만 부모님의 걱정을 말도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어려운 선택이었으므로 각오는 남달랐지만 순간 느끼는 두려움과 체력의 한계는 물리칠 수 없는 큰 벽과도 같았다. 또한 기술고시 특성상 시험정보 부족은 공부에 힘든 점으로 다가왔으나 그동안 모은 정보와 공개된 기출문제를 분석하면서 착실히 1차 시험 준비에 임했다. 2년 내에 고시합격을 목표로 했으므로 가능한 버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집 앞 독서실을 이용했으며 실패했을 경우와 공부의 연장성상을 유지하기 위해 야간 대학원에 입학하여 고시공부와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였다. 1차 시험까지 약 8개월 정도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공부라 마음이 바빴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체력의 저하는 극한점을 향하고 있었다. 더불어 극도의 긴장감으로 시험전날은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드디어 시험당일 피로와 긴장감으로 보낸 160분은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듯이 지나갔다. 다음 날 답안이 공개됨으로 시험점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75점이 조금 넘는 점수로 예전 합격선을 고려한다면 합격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안심할 수 없는 점수지만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한 후 2차 공부를 시작하였다. 준비된 자료도 없었고 2차 합격을 동년에 한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내년 2차 대비로 동년도 2차 준비를 시작하였다. 한 달 후 1차 합격(합격선:73)을 확인하였고 20일 후 바로 2차 시험을 치렀다. 얘기로는 들었지만 2시간 동안에 무엇인가를 10장 가량 쓴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였다.


2. 좌절의 선택
동년도 2차 시험을 치른 후 막연히 합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합격자 발표까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은 채 두 달여를 보냈다. 역시 합격점수와는 10점 정도의 점수 차로 낙방했다. 당연한 결과이면서 공부기간이 짧았던 걸 고려하면 내년도 2차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점수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2차 시험 준비는 12월 중순경에 시작되었고 학교 도서관의 책을 적극 이용하여 차근차근 서브노트라는 것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공부시간은 독서실이 열리는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목표로 노력하였다. 노트의 양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으나 그걸 이해하고 암기하기에는 벅찰 정도가 되었다. 물론 30대의 나이도 나이려니와 체력저하도 그 원인이었다. 체력유지를 위해 근처 헬스클럽에서 하루 1시간 정도 가벼운 체조 및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험이 임박해 질수록 긴장감과 불안감은 더해갔으며 그 결과 소화불량을 비롯한 각종 신경성 질환에 시달여야 했다. 결국 2차 시험기간 동안 극심한 신체리듬 저하는 시험결과에 반영된 듯 평균 2점 정도의 차이로 떨어졌다. 하늘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진 거처럼 자신의 한없는 초라함에 보낸 한 달 여의 절망과 좌절의 시간... 마음 졸이며 잠자고 밥 먹는 시간외엔 모조리 공부시간에 투자하여 스스로 할 만큼 했다는 자족적 넋두리도 한없이 메아리쳐 사라지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분명 있을 거란 삶의 방식도 한 낫 물거품 이였던가.. 이 소단원의 제목이 좌절의 선택이란 바로 실패의 원인이 나의 마음 상태가 아니었었나의 나름의 분석 때문이다. 첫째, 공부시간이 길었으나 체력관리 및 스트레스 관리 부족 둘째, 합격의 순간보단 떨어졌을 때의 불안감에 걱정이 너무 앞섬 셋째, 최선의 노력은 몸이 아플 정도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


3. 희망으로의 선택
뒤늦게 시작한 공부라 2년 내에 끝내겠다는 생각이 좀 더 오랜 기간을 공부한 분들께는 자만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그것만은 아닌 듯싶다. 실력의 없어서 혹은 운이 없어서란 말은 아무 위로도 되지 않을뿐더러 운이나 실력으로 돌리기에는 더욱 안타까운 것이기에.. 소주, 늘어나는 담배, 끝없는 한숨으로 보낸 한 달 여의 시간 후 재취업을 하기 위해 각종 구직란을 뒤지던 2003년 1월 어느 날 재시험을 결심하고 학교 앞으로 거처를 옮겼다. 미래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의 불투명을 뒤로한 채 마지막 고지의 산행에서 다시 시작점으로 내려와 더 이상이 떨어질 곳이 없는 것이 새로운 희망인양 다시 책을 잡았다. 이번 년도의 1,2차 시험일정은 예년보단 한두 달 당겨졌으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불안감은 있었으나 오히려 힘든 준비기간이 단축되는 것이 새롭게 시작한 긍정적 사고였다. 처음 시작한 공부는 소음진동기술사 자격 공부였다. 2차 과목 중 소음진동 학 때문에 전년도 낙방에 대한 한풀이를 하듯 고시보다는 기술사 공부에 마음을 잡아나가고 있었다. 두 달 여의 공부로 기술사에 합격할 수 있을지의 불안감을 ‘해야 된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밀고 나갔다. 3월 9일 기술사 시험을 치른 후 바로 고시 1차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날짜까지는 4개월, 이후 한 달 후에 다시 2차 시험이라 항상 모자라는 시간이지만 기존 공부 패턴을 조정하여 운동과 산책, 수면시간을 늘렸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 지속적으로 합격의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하였으며, 긍정적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4월말 기술사 1차 시험 발표 날이다. 꼭 붙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하늘에 대고 마음속으로 외쳤건만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합격을 한 것이다. 기술사 2차 시험은 경력에 따른 면접시험이므로 합격이나 다름없었다. 그 합격이 고시 동차합격의 견인차인 양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Ⅳ. 합격의 순간

드디어 1차 시험이다. 부족한 시간에도 전력투구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술사 합격으로 얻어진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 그리고 합격후의 모습을 그리고 상상함이 아니었을까.. 1차 시험점수는 75점대(합격선:68점대)로 바로 다음 날부터 2차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 달 정도의 시간으로 4과목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1차 공부 중 틈틈이 준비했던 환경화학과 기술사 공부로 아직 감각이 살아 있든 소음 진동 학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수질오염관리와 환경계획이었다. 최근 시사적인 것이 중요한 환경계획은 1차 준비로 거의 손을 댈 수 없었고 수질은 광범위한 공부범위와 양 때문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며 묵묵히 밀고 나갔다. 6일 동안에 4과목의 시험이 끝났다. 예상한 문제와는 다소 다른 문제가 많았지만 용하게도 잘 이끌어 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차 발표 날이다. 그토록 바라던 합격이었다.(합격선:63.08) 점수가 왠지 합격선 보단 높을 거란 생각을 하며 먼저 기술사 2차 시험 준비 후 고시 3차 면접 준비를 하였다. 마지막 고시 3차 면접시험을 긴장 속에 치렀고 결국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환경 직 수석의 영광(득점:71.66)과 기술사 최종합격까지...


Ⅴ.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대학 졸업 후 8년간의 선택과 그 선택에서 느꼈던 절망과 좌절 그리고 희망과 기쁨 등을 피력하였다. 조금은 과장된 절망과 희망의 얘기였는지 모르지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은 꿈꾸며 상상하고 형상화하는 사람의 것이며, 기회는 그 희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절과 절망도 그것을 선택하는 자의 것일까... 마치 고시합격이 인생의 대단한 것을 이루고 삶의 진리를 깨우친 양 얘기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못된 오만함에 고개 숙인다. 이 글을 맺으며 공부방법론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할애하지 않은 것이 시험정보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이란 테마로 일관한 것은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선택들이 최선이 되고 또한 후회 없는 선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마음의 상태이며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시험을 준비하며 보냈던 적지 않은 기간 동안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엉뚱한 말을 하고 싶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가 자신이 세상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면 세상의 주인공은 개개인인 내가 아닐까? 소원을 이루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 까’ 이것저것 궁리하고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반대의 경우를 예상해도 안 되며, 의지의 힘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완전히 자유스럽게 아이들처럼 무작정 믿는 겁니다. - 머피의 법칙 중에서 -